[인사이드 시민] #제7편 _ 이정희 이사
(사)시민 제6기 임원이 새로 구성되었습니다. 특히, 이번 해는 조직 재구조화를 위한 전환기라는 중차대한 시기에 놓여 있기도 합니다. 우리가 해야 할 본연의 역할을 상기하면서 또 새롭게 나아가야 할 방향은 무엇일지, 새롭게 함께 하시게 된 이사님들은 (사)시민을 어떤 마음으로 바라보고 계시는지 회원님들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인사이드 시민'은 시민의 사람(人사이드)을 소개하는 의미와 시민 속으로(inside) 좀 더 깊게 들어가보자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 |
일곱번째 인터뷰이는 이정희 이사(전, 딜로이트 안진회계법인 상임고문)입니다. 인터뷰 내내 여러 주제의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정희 이사님의 다양한 사회적 관계력과 관심사에 가히 놀라움을 금치 못한 시간이었습니다. 30여년 전부터 이미 시민사회 내의 여러 단체들과도 다양한 방식으로 관계를 맺어오시기도 했습니다. 이정희 이사님은 회계사로서 41년 간 조직 내에서 활동하시다가 8월부터 완전한 자유인이 되셨는데, 이사님의 요즘 근황을 비롯하여 현재 이사진 중에서 (사)시민과 가장 오랜 시간 동안 함께 하신 입장에서 (사)시민의 변화에 대한 단상에 대해 오랜 시간 동안 찐!하게 함께 나누었습니다.
"정답은 존재하는 것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지 않는 것을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
지난달부터 자유인이 되셨는데, 요즘 근황은 어떠세요? 조직생활을 오래 하신 만큼 오랫동안 쌓인 루틴이 있을텐데, 새로운 루틴이 생기셨나요?
여름 동안 너무 더워서 조용히 지내면서 있었어요. 자연의 삶을 굉장히 오랜만에 즐기고 있어요. 특별한 루틴은 없고, 가끔 산에 다니고 하는 정도이고요. 게을러서 규칙적인 운동은 잘 못해요. (하하) 최근에 좀 달라진 것은 독서리듬을 찾은 건데요. 그래서 다양한 장르의 책을 많이 읽고 있어요. 사람들도 많이 만나고 있고요. 소위 직작생활하고 사회활동 하면서 만나는 사람은 거의 비지니스와 관련된 사람이잖아요. 일을 하면서 고향친구들은 잘 못 만났는데, 지금은 그런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있어요. 그래서 지인들과 편히 만나고,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사랑방 같은 공간을 연말이나 연초 즈음에 만들 생각을 하고 있어요. 무언가를 도모하기 위한 것은 아니고, 그야말로 사랑방 같은 공간이예요. 우리 이사님들도 편하게 오시고. 류홍번 이사님이 바둑 3급이라고 하던데, 와서 같이 바둑도 함께 두고. (하하) 루틴이라는 것은 나중에 또 자연스럽게 생기지 않을까 하지만, 제가 후배들에게 많이 쓰는 말 중에 하나가 '인간 사회에 없는 세 가지가 있다 : 정답이 없고, 공짜가 없고, 비밀이 없다.'라는 말이거든요. 저는 이 중에서 '정답이 없다'는 말이 참 마음에 들어요. 정답은 존재하는 것을 찾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지 않는 것을 자기가 만드는 거거든요. 다른 사람이 만들어 놓은 것을 정답이라고 생각하고 쫓아가면 피곤하고, 의미도 약해지잖아요. 새로운 정답을 찾게 되면 다행이지만, 또 못 찾으면 어때요? 그렇게 저도 당분간 지내려고 해요.
저희도 저희가 만드는 길이 정답이라고 생각하는 마음으로 밀고 나가겠습니다. (하하) 처음에 <시민>은 어떻게 아시게 되셨나요?
2017년에 임현진 전 이사장님(서울대 사회학과 명예교수)을 통해서 알게 되었어요. 임현진 교수님과는 꽤 오랫동안 이런저런 인연이 있었어요. 1990년대 초반부터 알았는데, 본격적으로 1995년에 시민정치 활동을 하면서 자주 만나게 되었어요. 그 당시에도 한국 정치가 퇴행기에 있었어요. 3김 시대가 시작되면서 사회적으로 여러 문제의식이 많았죠. 그래서 임현진 교수님을 비롯한 여러 선배그룹들과 함께 '정치개혁시민연합'을 만들었어요. 그때 당시 젊은 사람들이 함께 모여서 젊은 정치인 150인을 선언했어요. '희망의 정치를 여는 젊은연대'라는 이름으로 연대했는데, 저도 거기에 한 사람으로 참여했어요. 그때부터 임현진 교수님과 인연을 이어오던 차에 2017년에 <시민> 이사장을 하시던 임현진 교수님이 저에게 당신은 회계도 알고, 경제분야에서도 여러 실무 경력이 있으니 이런 사람들이 <시민>에 들어와서 여러 것들을 살피는 게 필요하지 않겠냐고 제안해서 참여하게 되었어요.
그전에는 <시민>에 대해 잘 모르셨겠네요?
그렇죠. 당시 결합하면서 중간지원조직에 대해서도 처음 알게 되었어요. 중간지원조직이라는 개념이 처음에는 생소했죠. 그전에는 참여연대, 경실련, 환경운동연합 이런 단체들만 생각했는데, '시민단체를 위한 시민단체'가 처음에는 바로 와 닿지 않더라고요. 생소했지만 무엇을지향하는지 이해가 되었고, 생소하게나마 이런 조직이 필요하구나, 이런 단위로도 일을 할 수 있는 거구나 하는 느낌을 당시에 받았죠.
약 7년이 지난 지금, 그 생소함이 조금은 줄어드셨을까요?
지금은 물리적 시간이 많이 지났기 때문에 생소함도 덜하지만, <시민>에 대한 사회 일반의 인지도가 아직 낮기 때문에 또 다른 의미의 생소함이 여전히 남아있는 것 같아요. 이건 앞으로 우리의 조직적 과제와도 연동이 되는 부분인 것 같아요.
처음 <시민>과 결합하셨을 때, 가장 인상깊게 다가왔던 구체적 활동 중, 기억에 남는 게 있으실까요?
당시에 활동의 양과 비중이 <시민>이 운영했던 서울시NPO지원센터 쪽에 집중되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러다보니 이사님들을 비롯한 시민에 참여하는 회원분들도 <시민>을 센터와 동일시해서 생각하고 있구나 하는 인상을 받은 기억이 나네요. <시민>의 역사가 오래되지 않았기 때문에 채워나가야 할 부분이 당시에 많이 있었지만, 사회적으로 대단히 필요한 일이라고 느꼈어요. 2017년은 조직이 만들어진지 4년 밖에 안 지났기 때문에 10년 정도 지나면 어느 정도 내용도 채워질 것으로 기대했고, 변화에 대한 기대도 있었죠.
"(사)시민의 본래적 지향점을 다시 찾는 전화위복이라는 기회 앞에서 우리의 가치를 찾아간다는 것"
여전히 채워져야 할 부분이 많을 텐데요, 2024년 지금의 모습은 어떻게 다가오시나요?
역설적이지만 센터 운영을 종료한 것이 <시민>의 본래적 지향점을 다시 찾는 전화위복의 기회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작년에 창립 10주년을 맞이하면서 지난 시간을 돌아보고, 새로운 전망을 세우고 리비전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해요. 물론 그 과정 속에서 <시민>의 역할이 끝났다고 본 분들도 계셨죠. 그런 주장을 하신 분들의 마음도 이해는 되는데, 시민=센터를 동일시한 인식이 깔려 있었기 때문에 동력이 떨어져서 그랬을 것 같아요. 힘들게 끌고 가기 보다는 깔끔하게 정리하는 차원에서의 '발전적 해산'을 주장하시는 분들의 얘기도 공감은 하나, 저는 좀 더 유지를 해야한다는 입장에 가까웠어요. <시민>이라는 이름 하에 축적된 눈에 보이는 것과 눈에 보이지 않는 성과들이 있는데, 여기에서 멈추면 없어지는 거거든요. 회계학에 '성크 코스트(sunk cost)' 라는 것이 있어요. 코스트(비용)를 지불했는데 아무런 미래 잠재력을 담보하지 못하고 물 밑으로 가라앉아 버리면 끝이거든요. '밸류어블 리소스(valuable resource)'가 안 되는 거죠. <시민>이 지난 10년 동안 한 활동성과와 네트워크, 사회적 메시지 등 이런 가치있는 자원들이 꽤 있을 거거든요. 발전적 해산 차원에서 멈추면 그건 '성크 코스트'이거든요. 소중한 가치를 조금 더 이어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이를테면, '계속기업가치'와 '청산가치' 중 우리의 가치를 평가한다면 어디에 더 가까울지 당시 이사님들께 여쭤보았어요. 저는 그런 논의의 과정도 바람직한 과정이었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기업이 아니기 때문에 '계속기업가치'라고 표현하기 보다는 '계속조직가치'가 맞겠지만, 저는 우리의 눈에 안 보이는 성과와 가치가 더 많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10년 동안 쌓아온 우리가 발신했던 메시지와 아젠다, 성과 등이 우리 단위를 넘어서서 <시민>과 여타 영역 간의 네트워크, 관계 속에도 보이지 않게 연결되어 있는 게 많을 거거든요. '청산가치'로 접근하면 그냥 제로(0)가 되는 거죠. 쉽지는 않지만, 이 어려움을 타개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이나 전략을 우리가 구사할 수 있다고 봐요.
그동안 <시민>의 활동을 지켜보시면서 좀 더 집중해서 고민하셨던 부분은 어떤 게 있으실까요?
<시민>이 '시민단체를 위한 시민단체'라고 하는 것과 연관되는데요. 현대사회가 3대 권력으로 구성되어 있잖아요. 정치권력, 시장경제권력, 그 다음이 시민사회권력이 있는데, 이 세 개의 축이 견제와 균형을 잘 잡고, 내용있게 어우러진 사회가 좋은 사회이고, 민주사회이고, 지속가능한 사회라고 생각해요. 이 속에서 시민사회 권력을 어떻게 견고하게 만들어내고, 지속가능성을 담보해낼거냐가 중요해요. 그런 의미에서 특정 영역의 개별단위 단체들도 필요하지만, 전체적으로 큰 담론을 만들고, 조율하고, 사회적 발언력을 키우는 차원에서 <시민>의 역할이 있을 것 같아요. 이를 위해 내부적인 인적 구성도 외연을 좀 더 확장하면 좋을 것 같아요. 정책위원회도 새롭게 구성했으니까 조만간에 적절한 성과가 나오리라 보지만 우리 내부를 강화하고, 대 사회적인 아젠다, 중장기적인 지향을 차제에 재정비하면 좋을 것 같아요. 지금 우리가 갖고 있는 문제의식과 다를 바가 없는데 그런 부분에 대한 생각을 계속 하게 되더라고요.
조직 전환기 속에서 아직 정비해야 할 부분이 남아있지만 올해 외연이 조금 더 확대되었다고 느끼시나요?
제가 초기에 참여했던 시기와 비교해보면 확대되고 있다고 느껴요. 회원확대도 그렇고, 이사회 구성도 그렇고요. 이사회의 경우, 수적으로 양적으로 많이 다양해졌어요. 세대도, 영역도 그렇고요. 앞으로도 이런 포트폴리오가 잘 만들어지면 좋을 것 같아요. 활동력 있는 젊은 세대 분들이 이사로 많이 들어온 것은 좋은 구성이라고 생각해요. 초기에는 '시민단체를 위한 시민단체'로 우리의 역할을 규정하다보니까 시민사회계에서 권위가 있고, 무게가 실리는 분들로 구성이 되었는데요, 아젠다 셋팅에서는 유리할 수 있을 지 모르지만, 구체적인 전술을 구사하는데는 한계가 있어서 이번에 좀 더 실행력있는 구성으로 변화된 것이 바람직한 것 같아요. 조금 더 의사결정도 빠르고, 보다 실천력있는 활동을 지향하는 단위가 있는 것이 필요한 것 같아요. 또 한편 사회적 영향력도 동시에 키워나가야 하니까 고문단이라는 표현을 쓰던 다른 표현을 쓰던 <시민>과 지난 10년 간 특별한 관계가 없었더라도 사회적 신뢰도, 활동 영역 등을 고려해서 고문단을 잘 모시면 좋을것 같아요. 그분들의 역할을 잘 포지셔닝하는 것이 필요해요. 만약 어떤 정책을 법제화할 필요가 있을 때, 때로는 그분들이 로비스트 역할도 해야한다고 생각해요. 이사회 강화와 더불어 이런 어드바이스 그룹을 잘 셋팅하면 좋을 것 같아요.
이사님의 청년 시절은 어떠셨나요?
제가 대학에 가자마자 박정희 10.26 사건이 생기고, 다음 해 5.18 광주 민주화운동이 터지고, 주요한 시대적 사건을 다 경험한 세대예요. 이후 1987년 6.10 항쟁을 겪기도 했죠. 학교에 다닐 때는 소위 적극적인 학생운동권은 아니었지만, 졸업하고 회계사로서 사회활동을 하면서 그런 시대를 겪다보니 꾸준하게 사회에 관심이 생기고, 나름대로 시민단체 후원활동을 해 왔던 것 같아요. 그리고 가까이 지냈던 선배, 동료, 후배들 중 국회의원을 한 사람들도 많아서 한국 정치 또는 한국 사회에 대해서 계속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그런 연장선상에서 1995년에 정치개혁 관련 연대활동에도 참여를 했던 거죠. 그 이후, 여러 인연들이 닿아서 시민사회와의 인연도 많이 생겼는데요. 1997년 IMF가 터졌을때, 한국 사회에 큰 일이 벌어진 것을 모두 기억하실 거예요. 그 당시 실업극복국민운동위원회라는게 있었는데요, 그때 국민들 성금을 받았는데 약 1,300억원이 모였어요. 그 돈을 기반으로 실업구제 활동을 하는데, 돈을 쓰는 일이다 보니까 감사가 필요했어요. 그때 감사로 참여해달라는 제안을 받았었죠. 한 3년 동안 활동을 했어요. 이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나 최근에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서도 관련 활동을 했어요. 그 단체들의 성격을 돌이켜보면 지금 <시민>과 통하는 바가 있어요. 종합적이고, 상부 단위의 플랫폼 역할을 하는 거죠. 영역이나 거버넌스, 활동 방식은 다르지만 사회적으로면 비슷한 컨셉이거든요. 그래서 향후 <시민>이 이런저런 고민을 할 때, 그런 조직들도 나름 벤치마킹 대상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40여년 동안 회계사라는 한 길을 걸어오신게 쉽지는 않으셨을 것 같은데, 어떻게 택하시게 되셨나요?
경영학을 공부하면서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요. 그 당시는 진로에 대한 선택지가 넓지 않아서 정부 혹은 기업, 이 정도였죠. 회계사라는 것은 자격시험이니까 나중에 뭘 하든지 간에 자격증 하나 따 놓아보자라는 마음으로 시작을 했죠. (하하) 그러다가 회계사가 되었고, 한 10년만 해보려고 회계법인에 들어갔는데, 10년 지나고 보니까 이제 일을 배울만 한데 조금 더 해보고 나서 다음 루트를 고민해보자고 생각해서 15년만 더 해보자 하다가 지금까지 오게 되었죠. 흔히 인생이 우연의 연속이듯이 직업 선택도 그렇게 되었어요. 한번 발을 들여놓으니까 관성의 법칙에 의해 못 빠져나가고 이렇게 왔어요. 제가 2004년에 한번 빠져나오려고 시도했던 적이 있어요. 당시 제가 총선에 나가려고 예비후보로 등록을 하고, 당내 후보 경선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잘 안 되었어요. 얼마 전에 한국공인회계사회 회장 선거도 떨어졌는데, 인생에서 두 번째 낙선이네요. (하하) 사실 2004년도 그렇고, 이번에도 그렇고, 제 스스로에게 약간 놀랐는데, 결과에 대해 생각보다 아무렇지 않더라고요. (하하)
"지난 10년의 활동의 성과를 정리하고 축적함으로써 다음의 10년을 모색"
여러 시민사회 영역에 관여하시면서 시민사회의 변화 흐름도 많이 느끼셨을 것 같아요. 단체 활동을 직접 하신 건 아니어도 예전과 지금의 시민사회가 어떻게 달라진 것 같으세요?
제가 곁 가지로 본 것이기 때문에 저만의 느낌이고, 오류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요, 시민사회가 굉장히 커졌잖아요. 시민단체도 많이 늘어났고, 사회적 영향력도 커져 갔고, 전문성도 많이 올라갔고요. 90년대 중반 이후부터 지금까지 약 30년의 시민사회 역사를 보면 물리적 시간의 역사가 흐른 만큼 몸집도 커지고, 영역별 전문성도 분화되었지만, 시민사회 권력이라는 차원에서 보면 서로 연계하는 네트워크가 좀 약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2000년대 총선연대 때, 국민적 반응이 높았잖아요. 시민사회에 대한 사회적 영향력과 신뢰가 있었던 거였죠. 지금은 이런 역할을 하는 조직이 많이 없거나 약해진 측면이 있죠. 이런 면에서 과연 제3섹터에서 <시민>에 대한 평가, 예를 들면 위상이나 역할, 신뢰 등이 어떻게 평가되고 있는지 궁금해요. 90년대 중반 이후 시민사회가 본격적으로 분화되고 전문화된 역사를 생각하면 30년 역사 중, <시민>의 역사는 아직 10년 밖에 안 된거예요. 그동안 센터를 위주로 논의해오다 보니 <시민>의 본래적 역할과 기대가 축소되거나 감춰진 측면도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지난 10년을 한번 제대로 짚어보는 것이 필요한 것 같아요. 분명히 10년의 성과가 있거든요. <시민>이 지난 10년의 역사와 활동을 통해서 우리의 가치를 만든거잖아요. 잘잘못에 대한 성찰적 측면도 필요하지만, 지난 10년을 기초로 삼아서 다음 10년을 어떻게 그려나갈지가 중요한거죠. 그래서 우리의 활동을 잘 정리하고, 축적하고, 알리는 것이 필요해요.
예전에 기획재정부 세제심의발전위원회 위원으로도 참여하신 적이 있으신데요. 시민사회 활성화를 가로막는 세법들이 여전히 많은 실정이예요. 이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정치 영역과의 협력도 중요한데요. 어떤 전략으로 접근하면 좋을까요?
시민단체 활동에 대한 사회적 차원의 지원책이 마련되기 어렵고, 새로운 법을 만들거나 개편하는 것이 쉽지 않은 것도 우리 사회의 닫힌 구조의 한 일면이죠. 정부가 안 알아주고, 국회도 관심이 덜 하다는 비판도 비판이지만, 우리의 주체적인 역량을 앞에 놓고, 성찰적으로 봐야하는 측면도 있어요. 정밀하고 설득력있는 논리가 필요하죠. 일의 구조 상, 정부가 나서서 세법 개정안에 내용을 반영시키기는 지극히 힘들죠. 그렇지만 기부자에 대한 세제 혜택을 지금보다 더 주자는 얘기는 할 수 있는 거죠. 이런 것은 의원 입법을 통해서 해야 해요. 특히 여야를 막론하고 함께 논의를 할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하고요. 국회 시민정치포럼도 만들어졌으니 그런 단위와의 협력이 필요하죠. 우리가 아젠다를 잘 발굴해서 전략을 세우면 그 과정에서 기재부이든 실무 단위를 만날 기회가 생길 거예요. 그 분들도 생각보다는 프렌들리(friendly) 해요. 우리의 목표를 달성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과정을 통해서 우리의 존재와 활동의 가치를 알리는 것이 우리의 저변을 넓히는 일인 것 같아요. <시민>이 장기적으로 시민사회 권력을 대변하고, 대의하는 '광의의 씽크탱크'를 지향했으면 해요.
요즘 비영리단체에 대한 사회적 책임 중, 투명성 강화에 대한 요구가 높은데요. 특히 정부에서는 책무성을 회계투명성에 국한해서 바라보는 시선이 있어요. 회계전문가로서 과연 시민단체의 책무성과 투명성에 대해 어떻게 바라보고 계신가요?
현 정부의 발상이 일차원적인 안타까움이 있죠. 우리 사회에서는 투명성 하면, 회계 투명성으로 축소 이해하는 것이 많죠. 투명성이라는 것은 말씀하신대로 신뢰성, 책무성하고 맞물리거든요. 회계라고 하는 것은 활동이나 사업의 사후적인 결과물로 숫자로 표현해 놓은 결과치이죠. 사업과 활동의 신뢰성이나 투명성이 담보되면 회계 투명성은 당연히 나오게 되어있죠. 기술적 처리 과정에서 일부 오류가 있을 수 있겠지만 사회적으로 크게 염려할 차원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우리 사회는 투명성 이슈가 이데올로기적으로 너무 덮어 씌어진 부분이 있죠. 자체적인 거버넌스 내지는 관련 법률, 정부의 감시망에 의해서 걸러질 수 있는 거여서 굳이 문제 삼을게 없는 거예요. 정치권력은 시민사회권력에 대해서 지원하고 최소한의 감독, 감시는 법제화시켜놓으면 되는 것이죠.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것이 선진사회의 정치권력이 시민사회권력을 대하는 태도이거든요. 이게 가장 큰 입장 차이이죠. 이러다보니 자꾸 퇴행을 하게 되죠. 사회적, 역사적 퇴행이 되고 있는 이 현상에 대해서 정치영역에 있는 분들이 문제의식을 갖고 강하게 발언하고, 블로킹도 해 줘야 해요.
"내외부적 환경에 일희일비 하지 않고 우리의 역동성을 믿고 꾸준하게 정진해나가는 것이 필요한 이유"
끝으로 <시민>을 가장 가까이 오랫동안 봐 오신 이사님으로서 올해 새롭게 결합하신 이사님들께 전하실 말씀이 있으실까요?
다들 하나같이 에너지가 느껴지더라고요. <시민>에 대한 나름의 이해, 그리고 영어로 말하면, 커미트먼트(commitment; 헌신)가 있어 보여서 대단히 인상적이었어요. 좋은 분들을 잘 모신 것 같아요. <시민>이 굉장히 젊어졌고, 역동성이 느껴져서 고무적이었어요. 제가 조금 더 이사회에 오랫동안 몸을 담았던 사람으로서 이 분들의 역동성을 어떻게 잘 유지하는데 공헌을 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도 해 보게 되었어요. 그런 차원에서 제가 앞으로 이사회 회의 뒷풀이를 담당해야 하나 하는 생각도 했어요. (하하) 그리고 회계사로 국한시킬 필요는 없지만, 조직의 포트폴리오라는 차원에서 경제 전문가 등도 확대하면 좋을 것 같아요.
많은 이사님들께서 애써 주신 덕분에 조직에 활력이 생기고 있는 것 같아요. 기대에 어떻게 부응을 해야할지에 대한 고민도 많아요. 물론 사무처가 기대에 부응받기 위해 활동하는 것은 아니지만요. (하하) 저희가 올해 계속 '전환기'를 많이 언급하고 있는데, 전환기 속에서 사무처에게 당부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으시다면요?
현실적으로 여러가지 열악한 상황 조건 속에서 중심을 잡고 활동해 주시는 것에 대해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지난 8월 이사회 때, 사무처에서 이사진을 대상으로 오리엔테이션 브리핑을 해주셨잖아요. 저는 그게 상당히 인상적이었어요. 그리고 이렇게 이사 인터뷰 하는 것도 새로운 출발을 모색하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 같아요. 그동안 이사님들 인터뷰도 다 읽어보았어요. 인터뷰 내용을 통해 이사님들의 새로운 면도 알게 되었어요. 예를 들면, 박창신 이사님이 공기업에 다니다가 변호사를 하신 것도 처음 알게 되었어요. 이런 인터뷰 기획이 좋은 것 같아요. 이것이 우리를 조직화하는 거잖아요. 우리의 힘을 키우고, 아이디어를 내면서 하나하나 해 내가는 모습을 보면서 반갑고, 감사하고, 든든해요. 지금까지 해 온 대로 우리의 1년, 3년, 5년 단위의 로드맵과 전망을 가지고 꾸준하게 해 나가면, 한 4년 뒤인 창립 15주년 즈음에는 우리가 지금 논의하고, 고민한 이런 것들이 어느 정도 정돈되고, 새로운 과제도 나올거라고 생각해요. 바쁠수록 돌아가라는 말이 있잖아요. 중요하고 고민스러운 일일수록 꾸준하게 해야 되는 걸테고요. 꾸준하게 가고, 일희일비 하지 않는 것, 이것이 우리 <시민>이 가져야 할 자세이자 태도이지 않을까 해요. 어려울 때일수록 서로 기대고, 작든 크든 서로 지혜를 나눠가면서 함께 하면 좋겠어요.
이사로서 누구보다 <시민>과 함께 하신 오랜 시간 만큼, <시민>에 대한 애정과 기대를 더욱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우리는 어떤 관점으로 조직의 가치를 바라봐야 하는지, 중심을 잡고 활동을 해 나가는 것이 왜 중요한지 등에 대해 다시 한번 환기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였습니다. <시민>이 지난 10년 동안 만들어낸 사회적 성과가 분명하게 있다고 여러 차례 말씀하시는 모습 속에서 <시민>의 성과가 어느 한 조직만의 성과가 아닌 시민사회의 성과로 남기기 위해 우리는 어떤 태도와 자세를 취해야 할 지에 대해서도 새삼 더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회계사라는 업으로 한 분야에서 40년이 넘는 깊은 시간을 보내셨지만, 사회를 바라보시는 통찰력은 특정 분야를 넘어서 더 깊고, 더 넓은 시야를 갖고 계셨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사회적 통찰력이 중요한 지금, 이정희 이사님이 <시민>을 그리고 사회를 바라보는 그 시선 덕분에 <시민>도 '공익활동이 활발한 사회'를 위해 한발 더 용기낼 수 있을 듯 합니다. ❤
📢 인터뷰어 : 사무처 김유리&김승순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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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시민] #제7편 _ 이정희 이사
"정답은 존재하는 것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지 않는 것을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
지난달부터 자유인이 되셨는데, 요즘 근황은 어떠세요? 조직생활을 오래 하신 만큼 오랫동안 쌓인 루틴이 있을텐데, 새로운 루틴이 생기셨나요?
여름 동안 너무 더워서 조용히 지내면서 있었어요. 자연의 삶을 굉장히 오랜만에 즐기고 있어요. 특별한 루틴은 없고, 가끔 산에 다니고 하는 정도이고요. 게을러서 규칙적인 운동은 잘 못해요. (하하) 최근에 좀 달라진 것은 독서리듬을 찾은 건데요. 그래서 다양한 장르의 책을 많이 읽고 있어요. 사람들도 많이 만나고 있고요. 소위 직작생활하고 사회활동 하면서 만나는 사람은 거의 비지니스와 관련된 사람이잖아요. 일을 하면서 고향친구들은 잘 못 만났는데, 지금은 그런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있어요. 그래서 지인들과 편히 만나고,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사랑방 같은 공간을 연말이나 연초 즈음에 만들 생각을 하고 있어요. 무언가를 도모하기 위한 것은 아니고, 그야말로 사랑방 같은 공간이예요. 우리 이사님들도 편하게 오시고. 류홍번 이사님이 바둑 3급이라고 하던데, 와서 같이 바둑도 함께 두고. (하하) 루틴이라는 것은 나중에 또 자연스럽게 생기지 않을까 하지만, 제가 후배들에게 많이 쓰는 말 중에 하나가 '인간 사회에 없는 세 가지가 있다 : 정답이 없고, 공짜가 없고, 비밀이 없다.'라는 말이거든요. 저는 이 중에서 '정답이 없다'는 말이 참 마음에 들어요. 정답은 존재하는 것을 찾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지 않는 것을 자기가 만드는 거거든요. 다른 사람이 만들어 놓은 것을 정답이라고 생각하고 쫓아가면 피곤하고, 의미도 약해지잖아요. 새로운 정답을 찾게 되면 다행이지만, 또 못 찾으면 어때요? 그렇게 저도 당분간 지내려고 해요.
저희도 저희가 만드는 길이 정답이라고 생각하는 마음으로 밀고 나가겠습니다. (하하) 처음에 <시민>은 어떻게 아시게 되셨나요?
2017년에 임현진 전 이사장님(서울대 사회학과 명예교수)을 통해서 알게 되었어요. 임현진 교수님과는 꽤 오랫동안 이런저런 인연이 있었어요. 1990년대 초반부터 알았는데, 본격적으로 1995년에 시민정치 활동을 하면서 자주 만나게 되었어요. 그 당시에도 한국 정치가 퇴행기에 있었어요. 3김 시대가 시작되면서 사회적으로 여러 문제의식이 많았죠. 그래서 임현진 교수님을 비롯한 여러 선배그룹들과 함께 '정치개혁시민연합'을 만들었어요. 그때 당시 젊은 사람들이 함께 모여서 젊은 정치인 150인을 선언했어요. '희망의 정치를 여는 젊은연대'라는 이름으로 연대했는데, 저도 거기에 한 사람으로 참여했어요. 그때부터 임현진 교수님과 인연을 이어오던 차에 2017년에 <시민> 이사장을 하시던 임현진 교수님이 저에게 당신은 회계도 알고, 경제분야에서도 여러 실무 경력이 있으니 이런 사람들이 <시민>에 들어와서 여러 것들을 살피는 게 필요하지 않겠냐고 제안해서 참여하게 되었어요.
그전에는 <시민>에 대해 잘 모르셨겠네요?
그렇죠. 당시 결합하면서 중간지원조직에 대해서도 처음 알게 되었어요. 중간지원조직이라는 개념이 처음에는 생소했죠. 그전에는 참여연대, 경실련, 환경운동연합 이런 단체들만 생각했는데, '시민단체를 위한 시민단체'가 처음에는 바로 와 닿지 않더라고요. 생소했지만 무엇을지향하는지 이해가 되었고, 생소하게나마 이런 조직이 필요하구나, 이런 단위로도 일을 할 수 있는 거구나 하는 느낌을 당시에 받았죠.
약 7년이 지난 지금, 그 생소함이 조금은 줄어드셨을까요?
지금은 물리적 시간이 많이 지났기 때문에 생소함도 덜하지만, <시민>에 대한 사회 일반의 인지도가 아직 낮기 때문에 또 다른 의미의 생소함이 여전히 남아있는 것 같아요. 이건 앞으로 우리의 조직적 과제와도 연동이 되는 부분인 것 같아요.
처음 <시민>과 결합하셨을 때, 가장 인상깊게 다가왔던 구체적 활동 중, 기억에 남는 게 있으실까요?
당시에 활동의 양과 비중이 <시민>이 운영했던 서울시NPO지원센터 쪽에 집중되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러다보니 이사님들을 비롯한 시민에 참여하는 회원분들도 <시민>을 센터와 동일시해서 생각하고 있구나 하는 인상을 받은 기억이 나네요. <시민>의 역사가 오래되지 않았기 때문에 채워나가야 할 부분이 당시에 많이 있었지만, 사회적으로 대단히 필요한 일이라고 느꼈어요. 2017년은 조직이 만들어진지 4년 밖에 안 지났기 때문에 10년 정도 지나면 어느 정도 내용도 채워질 것으로 기대했고, 변화에 대한 기대도 있었죠.
"(사)시민의 본래적 지향점을 다시 찾는 전화위복이라는 기회 앞에서 우리의 가치를 찾아간다는 것"
여전히 채워져야 할 부분이 많을 텐데요, 2024년 지금의 모습은 어떻게 다가오시나요?
역설적이지만 센터 운영을 종료한 것이 <시민>의 본래적 지향점을 다시 찾는 전화위복의 기회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작년에 창립 10주년을 맞이하면서 지난 시간을 돌아보고, 새로운 전망을 세우고 리비전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해요. 물론 그 과정 속에서 <시민>의 역할이 끝났다고 본 분들도 계셨죠. 그런 주장을 하신 분들의 마음도 이해는 되는데, 시민=센터를 동일시한 인식이 깔려 있었기 때문에 동력이 떨어져서 그랬을 것 같아요. 힘들게 끌고 가기 보다는 깔끔하게 정리하는 차원에서의 '발전적 해산'을 주장하시는 분들의 얘기도 공감은 하나, 저는 좀 더 유지를 해야한다는 입장에 가까웠어요. <시민>이라는 이름 하에 축적된 눈에 보이는 것과 눈에 보이지 않는 성과들이 있는데, 여기에서 멈추면 없어지는 거거든요. 회계학에 '성크 코스트(sunk cost)' 라는 것이 있어요. 코스트(비용)를 지불했는데 아무런 미래 잠재력을 담보하지 못하고 물 밑으로 가라앉아 버리면 끝이거든요. '밸류어블 리소스(valuable resource)'가 안 되는 거죠. <시민>이 지난 10년 동안 한 활동성과와 네트워크, 사회적 메시지 등 이런 가치있는 자원들이 꽤 있을 거거든요. 발전적 해산 차원에서 멈추면 그건 '성크 코스트'이거든요. 소중한 가치를 조금 더 이어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이를테면, '계속기업가치'와 '청산가치' 중 우리의 가치를 평가한다면 어디에 더 가까울지 당시 이사님들께 여쭤보았어요. 저는 그런 논의의 과정도 바람직한 과정이었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기업이 아니기 때문에 '계속기업가치'라고 표현하기 보다는 '계속조직가치'가 맞겠지만, 저는 우리의 눈에 안 보이는 성과와 가치가 더 많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10년 동안 쌓아온 우리가 발신했던 메시지와 아젠다, 성과 등이 우리 단위를 넘어서서 <시민>과 여타 영역 간의 네트워크, 관계 속에도 보이지 않게 연결되어 있는 게 많을 거거든요. '청산가치'로 접근하면 그냥 제로(0)가 되는 거죠. 쉽지는 않지만, 이 어려움을 타개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이나 전략을 우리가 구사할 수 있다고 봐요.
그동안 <시민>의 활동을 지켜보시면서 좀 더 집중해서 고민하셨던 부분은 어떤 게 있으실까요?
<시민>이 '시민단체를 위한 시민단체'라고 하는 것과 연관되는데요. 현대사회가 3대 권력으로 구성되어 있잖아요. 정치권력, 시장경제권력, 그 다음이 시민사회권력이 있는데, 이 세 개의 축이 견제와 균형을 잘 잡고, 내용있게 어우러진 사회가 좋은 사회이고, 민주사회이고, 지속가능한 사회라고 생각해요. 이 속에서 시민사회 권력을 어떻게 견고하게 만들어내고, 지속가능성을 담보해낼거냐가 중요해요. 그런 의미에서 특정 영역의 개별단위 단체들도 필요하지만, 전체적으로 큰 담론을 만들고, 조율하고, 사회적 발언력을 키우는 차원에서 <시민>의 역할이 있을 것 같아요. 이를 위해 내부적인 인적 구성도 외연을 좀 더 확장하면 좋을 것 같아요. 정책위원회도 새롭게 구성했으니까 조만간에 적절한 성과가 나오리라 보지만 우리 내부를 강화하고, 대 사회적인 아젠다, 중장기적인 지향을 차제에 재정비하면 좋을 것 같아요. 지금 우리가 갖고 있는 문제의식과 다를 바가 없는데 그런 부분에 대한 생각을 계속 하게 되더라고요.
조직 전환기 속에서 아직 정비해야 할 부분이 남아있지만 올해 외연이 조금 더 확대되었다고 느끼시나요?
제가 초기에 참여했던 시기와 비교해보면 확대되고 있다고 느껴요. 회원확대도 그렇고, 이사회 구성도 그렇고요. 이사회의 경우, 수적으로 양적으로 많이 다양해졌어요. 세대도, 영역도 그렇고요. 앞으로도 이런 포트폴리오가 잘 만들어지면 좋을 것 같아요. 활동력 있는 젊은 세대 분들이 이사로 많이 들어온 것은 좋은 구성이라고 생각해요. 초기에는 '시민단체를 위한 시민단체'로 우리의 역할을 규정하다보니까 시민사회계에서 권위가 있고, 무게가 실리는 분들로 구성이 되었는데요, 아젠다 셋팅에서는 유리할 수 있을 지 모르지만, 구체적인 전술을 구사하는데는 한계가 있어서 이번에 좀 더 실행력있는 구성으로 변화된 것이 바람직한 것 같아요. 조금 더 의사결정도 빠르고, 보다 실천력있는 활동을 지향하는 단위가 있는 것이 필요한 것 같아요. 또 한편 사회적 영향력도 동시에 키워나가야 하니까 고문단이라는 표현을 쓰던 다른 표현을 쓰던 <시민>과 지난 10년 간 특별한 관계가 없었더라도 사회적 신뢰도, 활동 영역 등을 고려해서 고문단을 잘 모시면 좋을것 같아요. 그분들의 역할을 잘 포지셔닝하는 것이 필요해요. 만약 어떤 정책을 법제화할 필요가 있을 때, 때로는 그분들이 로비스트 역할도 해야한다고 생각해요. 이사회 강화와 더불어 이런 어드바이스 그룹을 잘 셋팅하면 좋을 것 같아요.
이사님의 청년 시절은 어떠셨나요?
제가 대학에 가자마자 박정희 10.26 사건이 생기고, 다음 해 5.18 광주 민주화운동이 터지고, 주요한 시대적 사건을 다 경험한 세대예요. 이후 1987년 6.10 항쟁을 겪기도 했죠. 학교에 다닐 때는 소위 적극적인 학생운동권은 아니었지만, 졸업하고 회계사로서 사회활동을 하면서 그런 시대를 겪다보니 꾸준하게 사회에 관심이 생기고, 나름대로 시민단체 후원활동을 해 왔던 것 같아요. 그리고 가까이 지냈던 선배, 동료, 후배들 중 국회의원을 한 사람들도 많아서 한국 정치 또는 한국 사회에 대해서 계속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그런 연장선상에서 1995년에 정치개혁 관련 연대활동에도 참여를 했던 거죠. 그 이후, 여러 인연들이 닿아서 시민사회와의 인연도 많이 생겼는데요. 1997년 IMF가 터졌을때, 한국 사회에 큰 일이 벌어진 것을 모두 기억하실 거예요. 그 당시 실업극복국민운동위원회라는게 있었는데요, 그때 국민들 성금을 받았는데 약 1,300억원이 모였어요. 그 돈을 기반으로 실업구제 활동을 하는데, 돈을 쓰는 일이다 보니까 감사가 필요했어요. 그때 감사로 참여해달라는 제안을 받았었죠. 한 3년 동안 활동을 했어요. 이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나 최근에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서도 관련 활동을 했어요. 그 단체들의 성격을 돌이켜보면 지금 <시민>과 통하는 바가 있어요. 종합적이고, 상부 단위의 플랫폼 역할을 하는 거죠. 영역이나 거버넌스, 활동 방식은 다르지만 사회적으로면 비슷한 컨셉이거든요. 그래서 향후 <시민>이 이런저런 고민을 할 때, 그런 조직들도 나름 벤치마킹 대상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40여년 동안 회계사라는 한 길을 걸어오신게 쉽지는 않으셨을 것 같은데, 어떻게 택하시게 되셨나요?
경영학을 공부하면서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요. 그 당시는 진로에 대한 선택지가 넓지 않아서 정부 혹은 기업, 이 정도였죠. 회계사라는 것은 자격시험이니까 나중에 뭘 하든지 간에 자격증 하나 따 놓아보자라는 마음으로 시작을 했죠. (하하) 그러다가 회계사가 되었고, 한 10년만 해보려고 회계법인에 들어갔는데, 10년 지나고 보니까 이제 일을 배울만 한데 조금 더 해보고 나서 다음 루트를 고민해보자고 생각해서 15년만 더 해보자 하다가 지금까지 오게 되었죠. 흔히 인생이 우연의 연속이듯이 직업 선택도 그렇게 되었어요. 한번 발을 들여놓으니까 관성의 법칙에 의해 못 빠져나가고 이렇게 왔어요. 제가 2004년에 한번 빠져나오려고 시도했던 적이 있어요. 당시 제가 총선에 나가려고 예비후보로 등록을 하고, 당내 후보 경선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잘 안 되었어요. 얼마 전에 한국공인회계사회 회장 선거도 떨어졌는데, 인생에서 두 번째 낙선이네요. (하하) 사실 2004년도 그렇고, 이번에도 그렇고, 제 스스로에게 약간 놀랐는데, 결과에 대해 생각보다 아무렇지 않더라고요. (하하)
"지난 10년의 활동의 성과를 정리하고 축적함으로써 다음의 10년을 모색"
여러 시민사회 영역에 관여하시면서 시민사회의 변화 흐름도 많이 느끼셨을 것 같아요. 단체 활동을 직접 하신 건 아니어도 예전과 지금의 시민사회가 어떻게 달라진 것 같으세요?
제가 곁 가지로 본 것이기 때문에 저만의 느낌이고, 오류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요, 시민사회가 굉장히 커졌잖아요. 시민단체도 많이 늘어났고, 사회적 영향력도 커져 갔고, 전문성도 많이 올라갔고요. 90년대 중반 이후부터 지금까지 약 30년의 시민사회 역사를 보면 물리적 시간의 역사가 흐른 만큼 몸집도 커지고, 영역별 전문성도 분화되었지만, 시민사회 권력이라는 차원에서 보면 서로 연계하는 네트워크가 좀 약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2000년대 총선연대 때, 국민적 반응이 높았잖아요. 시민사회에 대한 사회적 영향력과 신뢰가 있었던 거였죠. 지금은 이런 역할을 하는 조직이 많이 없거나 약해진 측면이 있죠. 이런 면에서 과연 제3섹터에서 <시민>에 대한 평가, 예를 들면 위상이나 역할, 신뢰 등이 어떻게 평가되고 있는지 궁금해요. 90년대 중반 이후 시민사회가 본격적으로 분화되고 전문화된 역사를 생각하면 30년 역사 중, <시민>의 역사는 아직 10년 밖에 안 된거예요. 그동안 센터를 위주로 논의해오다 보니 <시민>의 본래적 역할과 기대가 축소되거나 감춰진 측면도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지난 10년을 한번 제대로 짚어보는 것이 필요한 것 같아요. 분명히 10년의 성과가 있거든요. <시민>이 지난 10년의 역사와 활동을 통해서 우리의 가치를 만든거잖아요. 잘잘못에 대한 성찰적 측면도 필요하지만, 지난 10년을 기초로 삼아서 다음 10년을 어떻게 그려나갈지가 중요한거죠. 그래서 우리의 활동을 잘 정리하고, 축적하고, 알리는 것이 필요해요.
예전에 기획재정부 세제심의발전위원회 위원으로도 참여하신 적이 있으신데요. 시민사회 활성화를 가로막는 세법들이 여전히 많은 실정이예요. 이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정치 영역과의 협력도 중요한데요. 어떤 전략으로 접근하면 좋을까요?
시민단체 활동에 대한 사회적 차원의 지원책이 마련되기 어렵고, 새로운 법을 만들거나 개편하는 것이 쉽지 않은 것도 우리 사회의 닫힌 구조의 한 일면이죠. 정부가 안 알아주고, 국회도 관심이 덜 하다는 비판도 비판이지만, 우리의 주체적인 역량을 앞에 놓고, 성찰적으로 봐야하는 측면도 있어요. 정밀하고 설득력있는 논리가 필요하죠. 일의 구조 상, 정부가 나서서 세법 개정안에 내용을 반영시키기는 지극히 힘들죠. 그렇지만 기부자에 대한 세제 혜택을 지금보다 더 주자는 얘기는 할 수 있는 거죠. 이런 것은 의원 입법을 통해서 해야 해요. 특히 여야를 막론하고 함께 논의를 할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하고요. 국회 시민정치포럼도 만들어졌으니 그런 단위와의 협력이 필요하죠. 우리가 아젠다를 잘 발굴해서 전략을 세우면 그 과정에서 기재부이든 실무 단위를 만날 기회가 생길 거예요. 그 분들도 생각보다는 프렌들리(friendly) 해요. 우리의 목표를 달성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과정을 통해서 우리의 존재와 활동의 가치를 알리는 것이 우리의 저변을 넓히는 일인 것 같아요. <시민>이 장기적으로 시민사회 권력을 대변하고, 대의하는 '광의의 씽크탱크'를 지향했으면 해요.
요즘 비영리단체에 대한 사회적 책임 중, 투명성 강화에 대한 요구가 높은데요. 특히 정부에서는 책무성을 회계투명성에 국한해서 바라보는 시선이 있어요. 회계전문가로서 과연 시민단체의 책무성과 투명성에 대해 어떻게 바라보고 계신가요?
현 정부의 발상이 일차원적인 안타까움이 있죠. 우리 사회에서는 투명성 하면, 회계 투명성으로 축소 이해하는 것이 많죠. 투명성이라는 것은 말씀하신대로 신뢰성, 책무성하고 맞물리거든요. 회계라고 하는 것은 활동이나 사업의 사후적인 결과물로 숫자로 표현해 놓은 결과치이죠. 사업과 활동의 신뢰성이나 투명성이 담보되면 회계 투명성은 당연히 나오게 되어있죠. 기술적 처리 과정에서 일부 오류가 있을 수 있겠지만 사회적으로 크게 염려할 차원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우리 사회는 투명성 이슈가 이데올로기적으로 너무 덮어 씌어진 부분이 있죠. 자체적인 거버넌스 내지는 관련 법률, 정부의 감시망에 의해서 걸러질 수 있는 거여서 굳이 문제 삼을게 없는 거예요. 정치권력은 시민사회권력에 대해서 지원하고 최소한의 감독, 감시는 법제화시켜놓으면 되는 것이죠.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것이 선진사회의 정치권력이 시민사회권력을 대하는 태도이거든요. 이게 가장 큰 입장 차이이죠. 이러다보니 자꾸 퇴행을 하게 되죠. 사회적, 역사적 퇴행이 되고 있는 이 현상에 대해서 정치영역에 있는 분들이 문제의식을 갖고 강하게 발언하고, 블로킹도 해 줘야 해요.
"내외부적 환경에 일희일비 하지 않고 우리의 역동성을 믿고 꾸준하게 정진해나가는 것이 필요한 이유"
끝으로 <시민>을 가장 가까이 오랫동안 봐 오신 이사님으로서 올해 새롭게 결합하신 이사님들께 전하실 말씀이 있으실까요?
다들 하나같이 에너지가 느껴지더라고요. <시민>에 대한 나름의 이해, 그리고 영어로 말하면, 커미트먼트(commitment; 헌신)가 있어 보여서 대단히 인상적이었어요. 좋은 분들을 잘 모신 것 같아요. <시민>이 굉장히 젊어졌고, 역동성이 느껴져서 고무적이었어요. 제가 조금 더 이사회에 오랫동안 몸을 담았던 사람으로서 이 분들의 역동성을 어떻게 잘 유지하는데 공헌을 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도 해 보게 되었어요. 그런 차원에서 제가 앞으로 이사회 회의 뒷풀이를 담당해야 하나 하는 생각도 했어요. (하하) 그리고 회계사로 국한시킬 필요는 없지만, 조직의 포트폴리오라는 차원에서 경제 전문가 등도 확대하면 좋을 것 같아요.
많은 이사님들께서 애써 주신 덕분에 조직에 활력이 생기고 있는 것 같아요. 기대에 어떻게 부응을 해야할지에 대한 고민도 많아요. 물론 사무처가 기대에 부응받기 위해 활동하는 것은 아니지만요. (하하) 저희가 올해 계속 '전환기'를 많이 언급하고 있는데, 전환기 속에서 사무처에게 당부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으시다면요?
현실적으로 여러가지 열악한 상황 조건 속에서 중심을 잡고 활동해 주시는 것에 대해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지난 8월 이사회 때, 사무처에서 이사진을 대상으로 오리엔테이션 브리핑을 해주셨잖아요. 저는 그게 상당히 인상적이었어요. 그리고 이렇게 이사 인터뷰 하는 것도 새로운 출발을 모색하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 같아요. 그동안 이사님들 인터뷰도 다 읽어보았어요. 인터뷰 내용을 통해 이사님들의 새로운 면도 알게 되었어요. 예를 들면, 박창신 이사님이 공기업에 다니다가 변호사를 하신 것도 처음 알게 되었어요. 이런 인터뷰 기획이 좋은 것 같아요. 이것이 우리를 조직화하는 거잖아요. 우리의 힘을 키우고, 아이디어를 내면서 하나하나 해 내가는 모습을 보면서 반갑고, 감사하고, 든든해요. 지금까지 해 온 대로 우리의 1년, 3년, 5년 단위의 로드맵과 전망을 가지고 꾸준하게 해 나가면, 한 4년 뒤인 창립 15주년 즈음에는 우리가 지금 논의하고, 고민한 이런 것들이 어느 정도 정돈되고, 새로운 과제도 나올거라고 생각해요. 바쁠수록 돌아가라는 말이 있잖아요. 중요하고 고민스러운 일일수록 꾸준하게 해야 되는 걸테고요. 꾸준하게 가고, 일희일비 하지 않는 것, 이것이 우리 <시민>이 가져야 할 자세이자 태도이지 않을까 해요. 어려울 때일수록 서로 기대고, 작든 크든 서로 지혜를 나눠가면서 함께 하면 좋겠어요.
이사로서 누구보다 <시민>과 함께 하신 오랜 시간 만큼, <시민>에 대한 애정과 기대를 더욱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우리는 어떤 관점으로 조직의 가치를 바라봐야 하는지, 중심을 잡고 활동을 해 나가는 것이 왜 중요한지 등에 대해 다시 한번 환기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였습니다. <시민>이 지난 10년 동안 만들어낸 사회적 성과가 분명하게 있다고 여러 차례 말씀하시는 모습 속에서 <시민>의 성과가 어느 한 조직만의 성과가 아닌 시민사회의 성과로 남기기 위해 우리는 어떤 태도와 자세를 취해야 할 지에 대해서도 새삼 더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회계사라는 업으로 한 분야에서 40년이 넘는 깊은 시간을 보내셨지만, 사회를 바라보시는 통찰력은 특정 분야를 넘어서 더 깊고, 더 넓은 시야를 갖고 계셨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사회적 통찰력이 중요한 지금, 이정희 이사님이 <시민>을 그리고 사회를 바라보는 그 시선 덕분에 <시민>도 '공익활동이 활발한 사회'를 위해 한발 더 용기낼 수 있을 듯 합니다. ❤
📢 인터뷰어 : 사무처 김유리&김승순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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