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칼럼[정책칼럼] 이재명 정부의 기본사회, 시민사회 없이는 불가능하다

관리자
2025-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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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선

사단법인 시민 정책위원
한양대학교 제3섹터연구소 연구교수


# 이재명 정부 출범과 함께 국가적 의제로 부상한 기본사회, 그에 대한 기대와 우려

‘기본사회’의 기치를 내건 이재명 정부가 출범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성남시장과 경기도지사 시절부터 줄곧 주창해왔던 ‘기본사회’는 장기적 비전이나 정책 실험의 대상을 넘어 이제 대한민국의 국정 방향이 되었다. 기본사회 실현을 위한 국가 전담기구로 '기본사회위원회'를 설치하겠다는 공약도 내놓았으니, “국가가 국민의 미래를 책임지고, 희망과 혁신의 꽃을 피워내는 기본사회를 열겠다”라는 이재명 대통령의 포부는 곧 국정과제로 정식화할 전망이다.

그러나, 기본사회로 가자는 새 정부의 비전에 대한 비판과 우려의 시각도 만만치 않다. 헌법 제10조에 국민의 행복추구권 및 기본권 보장에 대한 국가의 책임이 명시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민 모두의 인간다운 삶을 국가가 책임지겠다는 기본사회의 핵심 가치는 사회주의적 발상이라는 이념적 공세를 받고 있다. 또한, 천문학적인 재정이 소요될 것이기에 실현 불가능하다는 논리도 널리 퍼져있다. 복지 확대를 주장할 때마다 전가의 보도처럼 등장하는 노동 의욕 상실, 도덕적 해이와 같은 목소리가 빠지지 않는다. 대선 과정에서는 유권자들의 표를 얻으려는 대표적인 선심성 공약으로 꼽히기도 했다. 기본사회가 추구하는 가치에 공감하는 경우라도 기본사회로의 구체적인 이행 전략과 경로에 대해서 의문을 표하거나, 기본사회에 반발하거나 저항하는 세력이 많아 혹시 좌초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국민도 많다. 전문가들도 기본사회 구상을 실현하는데 필요한 재원 규모를 산정하고, 마련하는 데에 많은 난관이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 제21대 대통령 취임 선서 (출처: 2025.06.04, MBC뉴스 생중계 갈무리)


# 현장성과 연대, 혁신으로 위기를 메워온 시민사회

이런 상황에서 ‘기본사회’의 실현을 앞당길 가장 안전한 길이자, 지름길은 무엇일까. 많은 이들은 ‘기본사회’ 실현의 관건이 재원조달 전략이라고 주장하지만, 나는 시민사회의 참여와 역할 활성화, 사회적 연대 강화 전략이라고 생각한다. 시민사회의 참여가 미진하고, 역할이 제한적이라면 ‘기본사회’는 그저 국가가 주도하는 복지 서비스의 확대에 불과할 것이다. ‘기본사회’가 헌법의 시민적 권리에 기반을 두고, 국민이 최소한의 삶의 기반을 가질 수 있도록 국가가 책임지는 사회라고 할 때, ‘기본사회’로 향하는 전략과 경로에서 시민사회가 빠진다면, 가까스로 쌓아 온 ‘복지는 시혜가 아니고 권리’라는 담론도 무너지게 되고, 시민은 한낱 복지 행정 서비스의 수혜자로 전락하게 될 수 있다. 

그동안 시민사회는 정부에 대한 감시와 견제의 역할과 함께 정부와의 거버넌스를 통해 정책의 공동생산자, 공공서비스의 공급 및 전달자 역할을 해왔다. 이재명 정부가 정확히 짚고 있듯, 오늘날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복합적 위기는 단편적 접근으로 해결 불가능하며, 정부가 혼자 나서서 해결할 수 없다는 점에서 시민사회의 역할은 더욱 확대될 필요가 있다. 그동안 시민사회는 참여와 연대의 가치와 현장에서 문제를 발굴하고 해법을 모색하는 전문성, 참신한 발상으로 대안을 제시하는 혁신을 통해 넘어진 시민을 일으켜 세우며, 흩어진 개인을 공동체로 연결하고, 구멍 난 사회적 안전망을 촘촘하게 메워왔다. 그렇기에 시민사회의 주요 역사는 국민의 인간다운 삶을 지키고, 행복한 삶을 추구할 수 있는 권리를 옹호하는 활동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아직 ‘기본사회’를 둘러싼 논의가 활성화되지 않은 탓이기도 하지만, 현재 ‘기본사회’는 정부가 막대한 재정을 쏟아부어 국민에게 필요한 복지 서비스를 확대하는 정책 정도로 인식되면서 재정전략만 강조되는 양상이 전개되고 있다. 그러나 ‘기본사회’ 실현에 필요한 건 과연 ‘돈’만일까? 적극적인 재정확대 정책을 취하더라도, 점점 증대하는 복지 요구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것은 분명하다. 당장 내년에 요구되는 예산 소요도 충족하기 어렵다는 게 현실적인 진단이다. 새 정부는 시민사회가 빠진 ‘기본사회’를 재검토하고, 재정전략을 넘어 시민사회의 참여와 역할 활성화, 사회적 연대를 강화할 수 방안을 숙고할 필요가 있다. 


# 기본사회로 가는 길, 숙의와 공론의 시민사회

‘기본사회’로 나아가는 데 필요한 시민사회의 또 다른 역할은 숙의와 공론이다. ‘기본사회’가 현재 대한민국이 당면한 위기를 해소하고, 새로운 사회로의 전환을 위한 종합적인 구상인 만큼, 정책 비전에서부터 목표와 전략, 이행과제와 정책 프로그램 등 모든 영역에서 다양한 목소리가 분출되는 것은 자연스럽다.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사회적 갈등이나 정략적 대립도 당연해 보인다. 기본사회가 대통령 한 사람의 정치적 구상이 아니라, 대한민국에 거대한 전환을 가져올 도전이라면, 기본사회를 둘러싼 사회적 논의가 더욱 활발하게 이루어져 정책에 대한 이해와 공감대가 넓어져야 할 것이다. 역설적으로 중요한 정치적 현안일수록, 갈등의 세기가 강한 의제일수록 신속한 해법보다는 숙의와 공론의 시간, 그리고 공간이 필요하다. 숙의와 공론은 정책의 정당성 확보는 물론 정책에 대한 수용성도 높일 수 있으며, 사회적 포용성과 통합성을 높이는 데도 기여하기 때문이다. 

시민사회는 그동안 한국 사회가 위기에 처해있거나, 심각한 사회적 갈등이 폭발할 때마다 공론의 장을 마련하여,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참여를 촉진하고, 숙고된 여론을 도출하는 일을 맡아 왔다. 이 과정에서 시민들은 공동체의 중요한 결정에 참여하며 책임감 있는 주체로 변화하는 경험을 했다. 새 정부는 오랜 시간 심혈을 기울여왔지만, 여전히 ‘기본사회’는 설계도가 분명하지 않다는 목소리에 귀를 내주어야 한다. ‘진짜 대한민국’을 만드는 길에 동참하고자 하는 많은 시민이 있다는 점을 놓쳐서도 안 된다. 정책적 이견이든, 이해관계로 인한 저항이나 반발이든 사회적 갈등을 정치권이 정쟁으로 가두지 않고, 널리 사회적 장으로 나올 수 있도록 길을 내야 한다. 사실 이는 모두 시민사회의 역할이기도 하다. 이재명 정부에게 기본사회로 가는 도정에 시민사회의 역할이 있다는 점을 강조하는 이유이다. 

멀게는 IMF 통치에서부터 가깝게는 12월 3일 비상계엄을 비롯하여 코로나 19, 이태원·세월호 사회적 참사와 무수한 자연 재난 등 크고 작은 사회적 위기 국면마다 시민사회는 행정의 손길이 닿지 않고, 시장이 애써 외면하는 곳에서 항상 시민의 곁을 지켜왔다. 때론 정부를 비판하고 감시하며, 때론 정부의 역할을 보완하거나 보충하면서 공동체를 보호해왔다.


코로나19 위기 1차 대유행 시 시민사회 영역별로 대응활동에 대한 연구조사 보고서 (출처: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 정치환경에 따라 달라져 온 시민사회 정책, 이제는 법제화가 필요하다

이에 정부도 시민사회의 역할을 인정하며, 위상을 강화하고 역할을 확대하기 위한 정책을 추진해왔다. 정부의 시민사회에 대한 태도가 획기적으로 바뀐 것은 김대중 정부부터이다. 국민의 정부는 5대 국정 지표에 자율적 시민사회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고, 100대 국정과제에 ‘민간운동의 체계적 추진과 지원 강화’를 포함하였다. 현재 시민사회 현장에서 가장 영향력이 크다고 할 수 있는 비영리민간단체지원법도 당시 집권 여당에 의해 발의, 제정되었다. 노무현 정부에서는 시민사회와의 협치 기제 강화 및 공익활동 지원이라는 국정과제를 세우고, 역대 정부 최초로 시민사회와의 소통 및 시민사회발전을 논의할 수 있는 기구로 시민사회발전위원회를 설치하고, 한국 시민사회발전을 위한 목표와 10대 과제를 제시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는 광우병 촛불 시위나, 세월호 등의 이슈로 인해 시민사회와의 갈등이 심각했으며, 시민사회 관련 정책이 전반적으로 퇴행하거나 부진했다. 문재인 정부 들어 시민사회 관련 정책이 대거 국정과제에 반영되었다. 역대 정부 중 시민사회의 위상과 역할을 가장 적극적으로 인식한 정부라고 할 수 있다. 시민사회 활성화에 필요한 대표적 제도 기반인 시민사회기본법 제정에는 실패했지만, 제도를 마련하는 과정에서 시민사회와의 소통이 가장 활발했다. 윤석열 정부는 그동안 시민사회가 추구했던 다양한 사회적 가치를 도외시하고, 오로지 투명성이라는 잣대만 강조하며 시민사회를 겁박했다.

윤석열 정부에서 시민사회는 그동안 수행해왔던 사회적 문제 해결자, 사회적 가치 창출자, 사회적 공론 형성자, 사회적 연대 촉진자, 사회적 혁신 선도자와 같은 역할을 일순간에 부정당하는 경험을 했다. 그 과정에서 시민참여와 공익활동 촉진, 시민사회의 역할 제고와 지속 가능한 성장기반 조성에 있어 정치적 환경의 중요성을 다시금 체감하였다. 그리고, 시민사회의 역사가 길지 않고, 압축 성장을 경험한 한국에서 시민사회의 기반조성과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한 법 제도적 환경 구축이 매우 절실하며, 시민사회 활성화 정책을 안정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시민사회 친화적인 법 제도적 기반을 시급히 갖추어야 한다는 교훈도 얻게 되었다. 물론 시민사회를 활성화는 데 필요한 법 제도적 기반을 갖추었다고 현재 대한민국이 당면한 문제나, 시민사회가 처한 위기를 일거에 해소할 수 없을 것이다. 다른 한편, 정치적 환경에 따라 정책의 부침은 당연하게 여겨질 수도 있다. 그러나, 적어도 시민사회기본법과 같은 시민사회 활성화 법제가 있다면, 정권의 정치적 당파성에 따라 시민사회 정책이 일순간에 좌지우지되고, 최소한의 합리적 근거도 없이 조변석개하는 일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시민사회기본법 적용대상과 범위 (출처: 시민사회활성화전국네트워크 정책제안서)


# '시민사회' 없는 '기본사회'는 없다

현재 새 정부는 국정과제를 다듬는 중이다. 시민사회는 이재명 정부가 ‘국민주권정부’를 내걸고 정책제안플랫폼을 가동하는 등 집권 초기부터 민의에 귀를 기울이겠다는 의지를 표방하고 있어 시민사회의 참여와 역할을 확대하는 정책이 활성화되리라 기대하고 있다. 이미 대선 과정에서 민주당과 ‘국민공회 운영’, ‘시민사회기본법 제정 및 시민사회위원회의 설치’, ‘민주시민교육지원법 제정’에 관한 정책협약을 맺었으며, 대통령도 취임사에서 ‘빛의 광장에 모인 사회대개혁 과제들을 흔들림 없이 차근차근 이행’하겠다고 공언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현재 국정과제를 선정하는 역할을 맡은 국정기획위원회에서 시민사회 활성화 정책 의제가 우선순위에 밀려 심도 있게 논의되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민주당과 시민사회가 함께 추진하기로 뜻을 모은 국민주권 실현을 위한 주요 정책 의제가 국정과제에 포함될 수 있을지 우려하는 목소리도 퍼지고 있다. 이재명 정부가 주창하는 ‘기본사회’도, ‘국민주권’도 정치적 구호나 그럴듯한 정책 비전, 세련된 프로그램만으로 그 실제적 가치를 구현하기 어렵다.

정책 성패의 핵심은 시민사회에 있다. 새 정부는 건강한 시민사회, 튼튼한 시민사회, 지속 가능한 시민사회 만들기에서 ‘진짜 대한민국’이 출발한다는 점을 명심하고, 이재명 정부의 국정과제에 국민공회, 시민사회기본법 제정 및 시민사회위원회 설치, 민주시민교육지원법 제정을 신속히 선정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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